글과 조선관광  文章与朝鲜

朝鲜金刚山纪行-序言

来源:原创作者:胤锦

这是站长组织自己的同学朋友团前往朝鲜金刚山及开城游览的纪行图文,供朋友们阅览参考


序言

从2003年专门从事朝鲜旅游以来到去年末,已经去过朝鲜不下四十次了。有带团去的,也有纯私人旅行去的。除了一般团队都去的平壤、开城、板门店、妙香山、南浦、元山、金刚山以外,还去过平城、沙里院、咸兴等城市,拜谒过檀君陵、东明王陵、王建王陵,登过金刚山、妙香山、九月山、正方山、松岳山,游览过九龙瀑布、云林瀑布、朴渊瀑布,参观过锦绣山太阳宫,访问过朝鲜民居,参加过朝鲜人婚礼...不再一一列举,恐有自喜得益之嫌。

本旅游纪行记述的是2013年10月1日与同学及其亲属为主的旅游团赴朝鲜金刚山的经历... ...


(序言为朝鲜文,可以翻过直接从(一)开始阅读)


조선의 가을

                                                                                                                                    -2013 금강산 평양 개성 여행 기사

서  언

이번의 조선여행은 이전의 어느번보다 멋있고 달랐다.

조선여행을 시작한지 10년만에 동창 여러분 가족들과 함께 조선을 다녀왔었다는 것부터 뜻이 달랐다.

동창모임에서나 평소 동창들한테서 여러번 들었던 조선여행을 하는데 동창들의 금강산여행을 한번 조직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사실 반년전부터 생각이 있었던 여행이었다. 다만 금년 봄철 남쪽정부에 대한 조선정부의 강경한 발언으로 반도형세가 돌연 긴장해진 것에 즈음하여 중국정부로부터 조선관광손님을 유치하지 말도록 권고를 받았기에 과연 금년에 동창들의 금강산여행을 조직할가 말가 망설이기도하였었다. 혹시 727조선전쟁정전 기념일이 지나면 풀리겠지 하다가 81중국건군절이 지나면 풀리겠지 하다가 815조선광복절이 지나면 이젠 풀리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정부의 긍정적통지는 내려지지 않았다. 도리어 물어볼때마다 여유국의 태도는 더욱 굳어지기만 하였다. 이건열번찍어 나무를 꺽어뜨리는 도리가 아니었다.

그사이 동창들한테서 조직하려던 금강선여행은 어떻게 됬는가 물음이 들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에 조직하지 않으면 않좋을 같았다. 신용문제도 있고 능력문제도 있을것 같았다. ㅎㅎ. 까짓거 하자! 정부에서 정말 검사가 들어오면 그때가서 다시 방법되면 되지 않는가. 중국의 일이란 하고 보야하는 판이다. 결국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 심양에서 출경하기 불편하면 단동으로 나가면 되지 않는가. 단동은조선관광을 하지 않으면 많은 여행사들이 문을 닫아야 하고 그러면 단동경제에도 좋을리 없기에 지방적보호주의와 아울러 그런 배짱이 있었다.

금강산과 개성을 볼려면 적어도 45일은 되어야 했다. 심양평양의 항공은 매주 수토요일밖에 없어 국경절계기로 마침 105 토요일 비행기로 심양에 돌아 오도록 하고 그러면 101 단동에서 출발할수 밖에 없었다. 그날 심양에서는 항공편이 없었던것이다.

생각을 마치고 밤을 새워 여행일정 주의사항을 만들어내 동창QQ모임과 웨이씬에 방송을 했다. 그때가 이미 새벽 두시반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

비지네스 챤스를 탐구하며

소박한 인생삶은 체험하고

어제의 참된정을 돌이켜보자.

웨이씬에 호응한 동창은 많지 않았다. 동이, 숙이,점호냥,김파,원이 그리고 동창외 친구 몇몇뿐이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호응해 나서는 동창이 없길래 실망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결심한 이상 이번 단체는 이루어야 할판이다. 홍보는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순수 상업성홍보 형식을 선택할수는 없었다. 상업성리윤을 따지지 않고 완전 원가에서 출발한것이라 신문같은 공중매체는 쓸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웨이씬에 다시 글을 올렸다.

身临其境,

将看到未曾看到的,

将听到未曾听到的,

将闻到未曾闻到的,

将感受到未曾感受到的。

或许在屏幕上见到过,

却无法拉近之间距离。

或许在闲谈中听到过,

却无法倾听其中的美妙。

更愿身临其境,

闻到你的气息,

感受你的心动!

... ...

大自然的美丽风景使人陶醉,

人世间的美好情感使人欣慰。

결국 수리국의 동직자가 연락을 해왔다. 자기 가족 그리고 부모 시부모 모두 일곱이 같이 갈수 없는가고. 그런데 완연사절 할수밖에 없었다. 이번 단체는 동창들모임단체여서 년세든 분들 가면 힘들고 불편할 것이라고.

이틑날 오전이 지나도 중학 동창들은 잠잠했다. 그래서 웨이신에 다시 시한수 읊었다.

叶红秋露鲜,

玉流丛石间。

凤起上八潭,

龙飞重九天。

그랬더니 전에 함께 조선관광을 갔다온 무한의 손님한분이 연락해 왔다. 함께 금강산가보고 싶다고. 하지만 동창들모임이라 고집하고 역시 사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몇일 지났는데도 계속 동창들은 포근포근 잠들었는지 말똥말똥 구경만 하는지 반응이 없었다. 그럼 계속 본때를 보여줘야지.ㅎㅎ

君可知红松近处松茸群,

殊香引得生灵亲。

形神备具奇妙在,

生鲜熟嫩皆相宜。

精气神!

聚来无数英雄豪杰,

存志远,

飞凤瀑,

九龙渊。

亭楼欢聚一堂亲,

更有捧来松茸美女仙!

이쯤하면 몇몇 동창은 호응해 나설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영웅호걸은 모두 자식과 미녀한테 반했는지 계속계속계속 사내맘을 속상하게만 한다...

언제부터 나한테 이런 결심한 일이면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만일 순수동창들의 팀이 모여지지 않으면 915일이후부터는 동창외 사람들도 받아들여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마침 안숙과 동이가 참가명단을 보내왔다. 가족함께 모두 일곱명이다. 소학교동창과 나까지 합치면 마침 열이다. 인원수는 적어도 단체는 이루어진셈이었다.

그래도 동창들이 많이 참가하기를 바랐다. 물론 한번에 사천원씩 쓰고 못산다는 조선에 여행가겠다고 선뜩 나설 사람은 많지는 않겠지. 억만장사가 되서 한가하게 놀고 먹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소수이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 생활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정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하겠지. 또한 동창이라도 나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 아마 서먹해하는 것도 있겠지. (중학교때 나는 조용히 공부를 얌전이였으니...)

그러는 사이에 99 조선국경절이 되었다. 조선에서 동업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중 한분은 글을 잘쓰는 사람이었다.유럽에도 주재했었어인지 대화가 재미있었고 풍채도 여간만 우아하지 않았다. 서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예기도 오거니 가거니 하니 기분이 좋지 않을리 만무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 시를 한수씩 지어 보게 되었다.

한참 모집하고 있는 금강산여행팀이 생각나서 그것을 집어서 시를 읊어보았다.

차라리 톺을거면 일찍이나 톺을 던지

산좋고 물좋은 고장 이제야 알았손가

금강산 일만이천 명승이 언제인데

알았소 알았고 금강산이 멋있단지

갈거니 갈거니 성화일랑 불지마소

구룡연 옥류담 만물상에 그리리라.

그리고 시조를 웨이씬에 올렸더니 옥형이 연락들어왔다. 글과 함께 올린 넓은 사진 어떻게 찍었는가고. 웬참.

그래서 내가 "시를 찬탄해줄가 했건만 엉뚱한 사진 예기를 하오니......"

그런데 웬지 갑자기 기분이 흐려지는데. 내가 지금 결심한 동창들여행팀도 제대로 모집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가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형편이 되는가!? 그래서 떠오르는 시구절이 있으니 바로 다음과 같도다.

넘풍성한 만찬에는 김치생각뿐이요

콩크리트 빌딩에서 흥정망정 술뿐일가

허허벌판 외로운곳 벼이삭이 이쁘구나.

이때 옥형이 웨이씬 연락 들어왔다. 마침이라 생각하고 내가 금강산가자고 다시 권유를 했더니만 글쎄 시원하게 대답을 하는것이었다. 마침 일행할 남동창이 없던참이라 기쁜나머지 나는 그에게 시를 한수 지어보였다.

고맙슴다 예쁜예기 더할게 뭐가있나

고운 여동창들 더고맙게 생각일게

산좋고 물좋은 곳에 회포나 풀어볼가

이어서 한수 지었다.

엇그적엔 백로이요 추석명월 내일이라

춘하추동 사계절에 이내몸만 냉열이냐

안녕하오 친구동창 보름달에 비쳐볼가

그런데 옥형 결국은 신청명단을 보내오지는 않았다. 국경정에 조선손님이 찾아오길래 떠날수 없다고.ㅎㅎㅎ. 괞이 흥분하게 만들어시만 훔쳐가고 말이야.

915일이 지나도 동창들은 모집되지 않았다. 할수없이 다시 신청들어오는 바깥 손님들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년세 너무 높으신 분은 사절하면서. 결국 923일까지 동창 가족들 10 바깥손님 8 열여덟명으로 조선금강산 DMZ여행팀은 이루어졌고 우리는 930 저녁녘열차로 단동에 가서 일박하고 이틑날 침대칸 국제열차를 타고 평양을 향하게 되었다.

열차에서의 조선맥주맛들기, 열차원사귀기, 개성민속촌 맥주모임하기, 판문점관람기, 금강산향 장거리버스 체험기, 금강산일출기, 구룡연 관폭정 맥주한컵, 금강산버스환승기, 만물상등산기, 삼일포야경기, 원산호텔 맥주방아가씨, 대게맛보기, 평양지철참관기, 대합조개구이파티, 만찬즐기기, 만경대단체사진 우물기.

재미난 이야기 많은데 이제 차차 예기하도록 합시다.

조선맥주 맛들기

국경절 연휴라 조선가는 소님이 여간만 많지 않았다. 단동현지 여행사의 직원이 이르기를 이번 단동에서 평양행 열차 260 침대석이 만원이어서 늦게 신청들어오는 비지네스손님들은 할수없이 뒤날로 미루어 출발시킬수 밖에 없었단다.

오전 935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마음도 함께 설레이며 열차따라 몸체따라 남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압녹강철교의 굵은 산형강(角钢) 차창뒤로 하나하나씩 지나가고 사이로는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오리대가리색갈처럼 푸르다1해서 압녹강이라 부른다는 강의 강물은 몇백킬로를 흘러오면서 힘이 들었는지 맥이 빠졌는지 여기서 보이는 것은 흙탕물처럼.누렇기만 완류였다.

압녹강.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되어 중국황해(조선서해) 흘러드는 길이 795킬로메터되는 강이다. 중국과 조선의 변경을 이루는 강으로서 많은역사적 이야기도 깃들은 강이다. 이를테면 위화도 회군.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압녹강을 보러 온것은 아니다. 또한 오래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었다. 렬차는 5분이 않되서 이미 다리를 지났고 몇분이 않되서 조선의 변경도시인 신의주시 역전에 도착하게 된것이다.

삼년전에 올때와는 달리 신의주역전 모습이 많이 변했다.

플래트홈의 바닥은 자갈들로 깔려 있었고 역전건물은 주체건물외에 모두 공사중이었다. 특별히 이번에 다시 가보고 싶었던 2층짜리 식당건물은 없어지고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건물이 있어도 쓸데가 업었다.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전에는 북경에서 출발하여 평양까지 가는 국제렬차를 탔었는데 신의주역에서 내려 플래트홈범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수가 있었었다. 그때 2층짜리 식당건물안에 커피점이 있어 들어가니 생맥주가있길래 친구 친구 안해 여동생 넷이서 탈피를 안주로 생맥주를 세조끼씩 제께버렸었다(여성들은 커미마시고) .500cc짜리. 그맛이 얼마나 구수하고 시원한지 조선에 오기만 하면 찾군 했었다. 손님들보고도 이제 신의주역에 가면 맛있는 생맥주가 있으니 내가 한탕 내겠습니다 했었는데생맥주는커녕 식당자체가 없어져 버렸고 기차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게 하니

그런데...그렇다고 맥주를 못마시게 하는 법은 없지. 생맥주가 없으면 병맥주라도 마셔봐야지.

이때 렬차원이 와서 안내가 누군가 묻는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정상 수속절차를 밟는 것이다. 조선입경검사, 세관검사, 위생면역검사.입경검사원이 렬차위에 올라와서 손님들의 려권과 사증을 모아가고 세관검사원이 올라와서 손님들의 짐을 몇몇 열게하여 검사를 하고 위생면역검사원이 올라와서 한번 돌아보고 내려간다.그러는 사이에 나는 렬차원과 말을 주고 받으며 인상을 남겼다. 물론 담배도 맛보라고 두갑쥐여주면서. 여섯시간쯤 같이 가야하는데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나쁜거 없으니

마침 중국손님 한분이 자기 손녀가 화장실을 봐야겠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는가 한다. 렬차가 정차하고 있으니 렬차화장실은 잠겨 있었던것이다. 그래서 플래트홈의 화장실에 가려는 목적으로 렬차원한테 예기를 했더니 글쎄 나한테 열쇄를 주면서 몰래 손님데리고 가보라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열쇄를 가지고 있는것이 꺼려서 렬차원한테 대신 수고해줄수 없는지 부탁을 했더니순순히 들어주는 것이였다. 착한 렬차원이지.

렬차는 신의주 역에서 두시간쯤 머물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침대자리를 찾아 집을 내려놓고 안착을 찾았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릴려니 지루해지기 시작 했다. 맥주! 맥주를마셔봐야 하는데. 손님들한테 응낙을 했으니 자기말을 삼켜서는 않되지 않겠는가. 물론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고 식당건물도 없어지긴했으나.

어떻게 하나?

때마침. 이야기는 항상 이렇게 공교로운 법이다. 맥주를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플래트홈에서 젊은 아가씨가 식품밀차를 밀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직 반반하게 세멘트질은 하지 않은 자갈바닥 상태여서 밀차를 반끌고 반밀며 힘들게 이동하고 있는것이었다. 그더다가힘들었는지 자리에 멈춰서서 우리 렬차칸쪽을 바라보며 땀을 딱는 모습이었다.

아가씨가 예뻣는지 말았는지 다만 밀차아래켠의 맥주병에 눈길이 가다았다. 여섯개씩 끈으로 매어놓은 맥주병이 있었다. 하하아 !

그래서 렬차원한테 돈을 쥐여주며 부탁을 했고 렬차원은 내려가서 맥주를 사왔다.

그런데 그맥주가 글쎄 그게 대동강맥주나 봉학맥주나 룡성맥주같이 조선의 맥주가 아니고 연경맥주였다. 연경맥주? 중국에 만든 연경맥주였다. 심양에서는 별로 본적 없는 맥주였다. 조선에 들어오자 마자 중국의 맥주를 마셔야 되나? 원참.

, 맥주를 마십시다. 맛있는 조선에서의 중국맥주

이미 사왔으니 물리기도 그렇고. 마셔야지. 나는 맥주마개를 따며 말하였다. 그런데 동행하는 여동창과 여성손님들은 술은 마다했고 안주를 꺼내준다. 조선맥주가 아니어서 마다를 할가? ㅎㅎ 그럼 우리 남성동무들이 할수없이 나서야지. 숙이 사촌동생과 남편, 연이 남편, 남성손님 그리고 모두 여섯 남성이 더러는 안고 더러는 선채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남성이 한사람 인긴한테.. 나이가 작아서.. 모임에는 들지 못하구동이 아들.

이윽하여 평양시간 한시쯤 되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양까지는 거의 여섯시간쯤 걸려야 한단다. 시간동안 침대에 누어서만 있겠는가?

마침 렬차원이 지나가는지라 나는 물었다.

렬차원동지, 혹시 렬차에 식당칸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뒤쪽으로 한칸만 지나면 식사칸입니다

거기에 대동강맥주 있겠지요?”

글쎄, 대동강맥주는 모르겠는데 맥주는 있을겁니다

그래서 숙이 남편과 연이 남편을 식당칸으로 가서 조선맥주를 마셔보자고 초청했다. 물론 나이 많은 남성손님두 초청은 했는데 사절당하고. 그래서 우리 셋이 일단 식당칸으로 갔다.

식당칸에는 이미 손님들로 차있있다. 테불이라곤 저쪽 주방쪽의 접대원이 쓰는 테블밖에 없었다.

몇분이세요?” 접대원 아가씨가 묻는다.

세명

자리가 없는데…”

저쪽 저자리는 않됩니까?”

자리는 좁기도 하고

괜찮습니다. 우리 먼저 저기에 앉고 좀있다 다른데 자리가 생기면 옮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접대원은 우리를 자리로 안내를 하며 테불위에 자기가 쓰던 작은 수첩을 치워주었다.